
洛東正脈11區間-周王山 1
황장재-먹구등-주왕산-대전사
2010년 2월19일(금) 밤 11시가 넘어 양재역을 출발하여
밤사이 버스에서 헤프닝도 일어나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황장재"로
출발하였습니다
[산행 개념도]
황장재-갈평재-대둔산입구-먹구등-내원동-대전사
[구글어스로 본 산행도]
오늘은 낙동정맥 11구간을 가는 날입니다만,
'낙동정맥' 마루금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엄연히 '洛東正脈'인 "周王山"을 탐방하고져,
11구간을 두구간으로 나누어 "국립공원 주왕산" 구경을 확실히 하려 합니다
[황장재] 오전 5시 35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지품면 사이를 넘어 가는 중요한 "국도 34번"에 있는
"황장재"에 새벽 5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황장재"에는 매점도 있고 주차공간도 있었습니다.
[황장재에 있는 산행 안내도]
낙동정맥길은 '황장재'에서 '대둔산', '먹구등', '명동재', '왕거암'으로 갑니다.
[황장재 산행 들머리]
'황장재'의 정상부근에 산행들머리는 계단으로 잘 정비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정비된 산행로는 여기서 끝나고 정맥 종주자들이나 다니는 험로가 기다립니다
[산행 시작] 5시 45분 [첫번째 만나는 이정표]
새벽 5시 4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1km정도 20분쯤 눈길을 뚫고 오르니 첫번째 이정표를 만납니다
몇일 전에 내린 눈이 전혀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어 오늘 산행은 무척 힘들것같은
예감이 출발부터 듭니다.
[갈평재] 6시 28분
어둠을 헤치고 "황장재"에서 40분 정도 오르니 "갈평재"가 나옵니다.
[황장재에서 대둔산까지 구글어스]
깜깜한 어둠만이 앞을 가로 막아 '구글어스'로 이해를 돕겠습니다.
[황장재에서 2,1km지점] 6시 52분
깜깜한 밤중에 장단지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한시간 정도 오르니 여명이 밝아 옵니다
하지만 여명으로 보이는 것들은 앞으로 가야할 첩첩산중 뿐.... 에구~
2.1km 오르막을 한시간 정도에 올랐으면 매우 빠른 속도입니다.
더욱이 엄청난 눈길을 한시간 정도에 올랐으면 엄청난 속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591m봉 오르는 길]
'갈평재'를 지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첫번째 만나는 무덤] 7시 35분
여명이 어둠을 삼키고 태양이 힘차게 솟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무덤을 지나 갑니다.
'황장재'에서 '대둔산'까지는 두개의 무덤을 꼭 기억해 둬야 합니다.
[대둔산 가는 길]
첫번째 무덤을 지나면 가파른 산봉우리가 나타납니다
엄청나게 내린 눈은 운치는 있지만 산객들에겐 애물단지
[주왕산 국립공원 경계 표지판] 7시 50분
황장재에서 약2시간 정도 오르니 "국립공원 주왕산 경계 표지석"이 나옵니다.
표지석 앞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있습니다.
이곳부터 '주왕산 국립공원'안을 걷게 되는 것인데....출입금지라니.....
하지만 계속 직진합니다.
[대둔산-먹구등 갈림길 묘지] 8시 5분
국립공원 경계 표지석에서 약15분 정도 직진하면 두번째 묘지를 만납니다
이 묘지가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대둔산"이고, 좌측으로 가야 낙동정맥길입니다.
[묘지 갈림길에서 본 "대둔산"]
'묘지 갈림길'에서 "대둔산"은 아주 가깝습니다.
갔다가 돌아 오는데 약 10분 정도면 됩니다. 반드시 되돌아 와야합니다.
[남동쪽 낙동정맥길]
'먹구등'으로 가는 낙동정맥길은 동남쪽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길찾기에 혼동을 주는 곳은 여기 뿐입니다
[너덜지대 근처에서 아침식사] 9시 10분경
대둔산 묘지 갈림길에서 약1시간 정도 진행하다가 '너덜지대'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834m봉 오르는 길] 9시 30분
눈밭에서 하는 아침식사를 약20분 정도에 끝내고 다시 걷고 또 걷습니다
[834m봉에서 바라 본 "태행산"과 "대둔산"]
'834m봉'에서 뒤돌아 보니 "오른쪽 대둔산"과 왼쪽 "태행산"이 보입니다.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제일 높은 산은 "주왕산"일것이라고 생각되지요?.
그러나 '주왕산 국립공원'에서는 저기 보이는 "태행산"이 939.1m로 제일 높습니다.
"주왕산'은 720.6m로 주변 국립공원 산들 중에 제일 낮습니다.
제일 낮은 산의 이름이 국립공원의 대표산이 된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더욱이 낮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더더욱 의아 스럽습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아마도 "周王"이라는 왕이 거처했던 곳이라 그렇게 된듯...
["먹구등"으로 가는 눈길]
이런 길을 걸어 보지 않은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이런 짖거리를 하고 있다구요? ㅎㅎ
겨울산행에 대비한 중무장을 하고도 양말은 젖어 발꾸락은 시려 오고....
몸속에서는 불이 나는데도 몸밖에서는 고드름이 얼고....
하지만 불어 오는 싱그러운 대자연의 향기와 .....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은
즐겁기만 합니다.
["먹구등"은 아직도 먼데...] 9시 50분
산봉우리를 오르고 또 내려 가고...또 오르고 또 내려 가고...
이것이 우리들의 일과인데도 "먹구등"은 아직도 멀리만 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희미한 산봉우리가 '먹구등'입니다.
[먹구등으로 가는 길]
'먹구등'으로 가는 마루금은 생각보다 비교적 평이했습니다.
중간 중간 화산암이 기묘한 형체를 하고 쓸쓸히 서 있습니다.
경상북도 청송에 왠 '화산암'이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앞으로 주왕산에 가서 설명 드림니다.
["기산저수지"]
'먹구등'으로 가는 마루금의 왼쪽으로는 "기사저수지"가 보입니다.
영덕군 지품면 기사리에 있는 상수원입니다.
[개선문] 10시 30분
화산암이 門모양을 하고 있어 제가 그냥 붙인 이름입니다.
[두고개] 11시 15분
'먹구등' 바로 아래에 있는 "두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두고개'는 "주왕산 계곡"으로 바로 내려 갈수있는 최단코스 고갯길입니다.
물론 낙동정맥길은 좌측으로 치고 올라 가야합니다.
'두고개'에서 우리 횐님들이 의논을 하고 있었는데.....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원래 계획은 "황장재-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내원동-주왕산계곡-대전사"였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국립공원 무단침입자들을 강력 단속한다는 첩보에 따라
"황장재-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왕거암-대궐령-주산재-우설령"까지로 변경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눈이 무척 많이 내려 예정된 시간에 가기는 쉽지 않고.....
또 이런 눈이 내린 '周王山'을 구경한다는 것은 일생에 한번 뿐인 행운일수도 있어.....
다소 단속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周王山"으로 가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원래 계획에 근접하는 코스로 되돌아 간것입니다.
#* 다음 구간은 "피나무재에서 별바위를 거쳐 왕거암-가메봉-주왕산-대전사"로 역행 하기로 하였습니다
가운데 '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왕거암' 구간은 "周王山" 산행으로 대체 합니다.
[먹구등 오르는 길] 11시 25분
일단 "먹구등"은 오르고 다시 '두고개'로 내려와 "주왕산 내원동"으로 내려 가려 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전혀 없는 눈길을 러쎌을 해 가며 오릅니다.
[먹구등 정상 표지판] 11시 28분
'두고개'에서 3분 정도 오르면 "먹구등"입니다.
'황장재'에서 약5시간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먹구등" 정상에는 정상 표지판 하나 덩그러이 있을뿐 .....
國立公園의 시설이 이 정도 뿐인가~라는 의아심이 듭니다.
이 표지판도 어느 정맥 종주자 개인이 설치해 놨을 것입니다.
요즈음 지방자치단체들의 전시행정이 극에 다다르고 있는데 청송군은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기본은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먹구등'에서 바라보는 '왕거암'] [명동재-느지미재-왕거암 가는 길]
'먹구등'에서는 앞으로는 건너편 '왕거암 907.4m', '가메봉'등이 잘 보입니다.
하지만 '왕거암'으로 가는 낙동정맥 마루금에는 하얀 눈만이 쌓여 있습니다.
[두고개에서 내원동으로 내려 가는 길] 11시 42분
다시 '두고개'로 내려와 주왕산 내원동으로 내려 갑니다.
[대둔산에서 먹구등까지 구글어스]
이해하기 쉽지요?
그리고 '두고개'가 왜 '두고개'인지 짐작할수가 있습니다
영덕 기산리로 넘어 가는 고개와 , 청송읍으로 넘어 가는 고개, 그리고 '내원동'으로 가는
고개가 있다고 "두고개"라고 할것이라는 걸 구글어스로 확인할수 있습니다
[두고개에서 내원동으로 내려 가는 길]
'두고개'에서 '내원동'으로 내려 가는 계곡길은 급경사에 눈길이라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피나무재'까지 가는게 더 나았을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내원동 내려 가는 길에서 보이는 '가메봉']
다움 구간에는 '피나무재'에서 '왕거암'을 지나 저 앞에 보이는 '가메봉'을 넘어
'주왕산'으로 갈것입니다.
오늘은 "주왕산 계곡 코스", 다음에는 "주왕산 능선 코스"가 되겠습니다.
[내원동 내려 가는 길]
주왕산 계곡은 생각보다 엄청 깊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주왕산 계곡은 계곡이 아니라 개천을 이루더군요
[내원동] 12시 44분
'두고개'에서 약 한시간 정도 계곡을 내려 오니 "내원동"이 나옵니다.
[내원 산수유 농장] 12시 57분
낙동정맥 '느지미재'에서 내려 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산수유농장'이 아직 남아 있고...
[내원동] 12시 58분
가장 많은 사람들, 즉 9가구가 모여 살았다는 "내원동"이 이제는 모두 철거되고
자연의 모습을 되 찾아 가고 있다고 자랑하는 곳입니다.
계곡인줄 알았는데 계곡이 아니라 상당히 넓지요?
[내원초등 분교가 있던 곳]
임진왜란등 전란이 있었을 때 전란을 피해 들어 와 산 곳이 이곳이랍니다
9가구가 살았으며 전기도 없던 곳에 초등학교 분교가 얼마 전까지도 있었답니다.
사람들이 살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만........
그들은 세월 속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내원동 거주지 철거 자랑]
국립공원의 자연자원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탐방객들에게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경관을
제공하기 위해 9가구를 모두 철거 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메봉' 산행 들머리]
옛 '내원초등 분교'가 있던 곳 앞에는 성황당 같은 것이 있고,
이곳에 "가메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나 봅니다.
[주왕산 3폭포로 내려 가는 길] 1시 5분
주왕산 내원동은 산간오지라기 보다는 가서 살고 싶은 멋진 계곡입니다.
['금은광이'-'가메봉'-'대전사' 갈림길] 1시 20분
'내원동'에서 조금 내려 오면 본격적으로 "주왕산"의 볼거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먼저 "금은광이-가메봉"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탐방통제소가 나옵니다
[내원동-대전사까지 구글어스]
주왕산계곡이 얼마나 길고 깊은지 알겠죠?
[제3폭포 입구] 1시 22분
"주왕산 국립공원"이 왜 국립공원인지를 알려 주는 자연경관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첫번째로 "주왕산 제3폭포"가 나옵니다.
[제3폭포 1단폭포]
겨울이라 폭포는 얼어 붙어 그 위용을 알기 어렵습니다
'제3폭포"는 2단폭포로 되 있습니다.
윗쪽 전망대에서 1단 폭포를 구경하고....
[제3폭포 1단폭포에서 내려다 본 '제3폭포 전망대']
아랫쪽을 내려다 보면 2단 폭포를 구경하는 전망대가 보입니다.
내려가서 보아야 1단 2단 폭포를 한꺼번에 볼수 있습니다.
[제3폭포 2단폭포에서 올려다 본 "제3폭포" 전경]
[제3폭포 안내문]
[제2폭포 입구 다리]
제3폭포에서 조금 내려 오면 사진에 보이는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제2폭포 가는 길이 좁게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제2폭포 입구 이정표] 1시 38분 [제2폭포 가는 길]
다리에서 제2폭포까지 200m라고 친절히 알려 줍니다.
[제2폭포]
우리나라 산에 숫자로 표기한 산봉우리나 폭포가 많습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쪽바리들이 자기들 임의로 붙인것들입니다.
모두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도 민족 정기 말살과 자기들 편의를 위해 숫자를 붙인게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왕산 협곡] 1시 55분
제2폭포를 나와 다리를 건너 내려 오면 峽谷이 시작 됩니다.
'주왕산의 名所'이며 '내원동'으로 들어 가려면 통과해야하는 關門같은 것입니다.
[주왕산 협곡]
몇명의 문지기만 있어도 방어가 가능 할 정도의 峽谷입니다.
전란시 '내원동'으로 피란을 온 이유를 이제서야 조금 알겠고.....
'내원동'은 상당히 안전한 곳이었다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또한 농사를 지을수 있을 정도의 논밭이 있어 먹고 살수 있는 곳이었기에
피난처로 안성맞춤이었나 봅니다.
[제1폭포]
峽谷이 있는 곳에 '제1폭포'가 있습니다.
'제1폭포'는 규모가 제일 작더군요.
[주왕산 협곡]
'제1폭포'를 지나 '주왕산 협곡'을 빠져 나갑니다.
절묘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주왕산'은 火山의 용암으로 이루어진 火山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땅덩어리가 그렇듯 주왕산도 지금으로 부터 약7,500만년전...
그러니까 공룡들이 우리나라의 주인이었던 때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 났지요.
화산 폭발과 지진과 함께 엄청난 기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공룡들은 몰살 당하고 중생대 백악기가 끝나고 신생대로 접어 듭니다.
화산암이기 때문에 풍화작용에 약해 기묘하게 침식당한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소대]
峽谷을 빠져 나오니 앞에 엄청난 바위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이 岩峰이 "학소대 鶴巢臺"입니다.
"소 巢"는 "새 둥지"를 이르는 말이니, '鶴둥지'가 있다는 곳입니다.
전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이 절벽 위에는 靑鶴과 白鶴 한쌍이 둥지를 틀고 살았는데...
어느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슬피 울며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학들은 간데 없고 빈 둥지만 절벽 위에 남아
옛 주인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시루봉' 쉼터] 2시 1분
"학소대" 바로 아랫쪽에는 쉼터가 보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왕 중에서 어느 왕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이구동성으로 "세종대왕"이라고 할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왕비였던 "소헌왕후"도 왕비 중에서 손꼽히는 존경받는 왕비였지요
그 "소헌왕후"가 "청송 심씨" 입니다. 또한 명종의 왕비였던 '인순왕후'도 '청송 심씨"였습니다
이런게 연유가 되어 왕실에서 주왕산을 '청송 심씨'들의 수호산으로 지정하여 주어서
한동안 "심씨 문중 소유"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세종대왕의 부인인 "소헌왕후"의 고향이 청송인지는 모르겠으나 "청송 심씨"인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전국을 다니면 알게 되는게 무척 많습니다.
참고로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은 "파평 윤씨"집안입니다.
'파평 윤씨' 문중에 이쁜 여자들이 많나 봅니다.
지난주 서울시계2구간에서 알려 드린 '태릉'에 잠자고 있는 여인이 '문정왕후 파평 윤씨'입니다
['시루봉']
'학소대' 바로 아래 쉼터로 내려 가면 주왕산의 명물 "시루봉"이 거만한 자세를 보이며
이것이 '시루'인지, 인간의 탈을 쓴 '요괴'인지, 괴이한 岩峰이 서 있습니다
제가 볼때는 '크로마뇽인' 같습니다만....
['시루봉']
'시루봉'은 시루떡을 만드는 시루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대부분 요상한 사람 얼굴을 닮았다고 이구동성...
'시루봉'은 밑바닥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합니다
['주왕굴' 가는 자연탐방로] 2시 4분
'시루봉'을 지나면 "주왕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대부분 넓은 길로 그냥 대전사로 가버립니다만, "주왕암"으로 가는 "자연관찰로"로
가시길 권해 드림니다. 볼것들이 이곳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망월대] 2시 16분
자연탐방로를 따라 10분쯤 가면 "망월대"라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주왕산 계곡을 조망할수 있는 좋은 장소 입니다
['망월대'에서 바라 보는 "주왕산 주계곡"]
지나온 주왕산 계곡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周方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낙동정맥"에 있는 산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편 '주왕산'의 본명은 "석병산 石屛山"이라고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혼란스럽죠?
[급수대]
"급수대"는 "汲水臺"라고 씁니다.
급수대의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 '무열왕 5대손인 "상재 김주원 上宰 金周元'을 38대 왕으로
중시 및 각부 대신들이 추대하였답니다.
그런데 즉위 직전에 '김경신 金敬信'이 자기가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키자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으로 은둔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대궐址는 "급수대"의 정상이라고도 하며 그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장에는 샘이 없어 계곡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급수대"라고 부른답니다.
["연화봉"과 "병풍바위"]
"주왕산"의 원명이 "석병산 石屛山"이라고 하게 된 동기가
앞에 보이는 "병풍바위" 때문이랍니다
'병풍 屛'이지요.
[주왕암] 2시 24분
'망월대'에서 조금 더 전진하면 바로 "주왕암"이 나옵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서는 "周方山"이라고 표기했고,
이곳 안내판에서는 옛이름이 "석병산 石屛山"이었다고 하는데,
진정 "주왕산 周王山"이라고 하게 된 동기가 되는 곳이 이곳 "주왕암"과 "주왕굴"입니다.
[주왕암 입구] 2시 28분
"주왕암 周王庵"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 갑니다.
[周王庵]
['주왕암' 안내] [주왕굴 안내]
"周王" 그는 누구인가?
그의 이름으로부터 이 산 이름이 "周王山"이 되었다니 그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235년전 중국 당나라시대에 한 소년이 기골이 장대하게 태어 납니다.
그는 "진"나라의 후손으로 성은 "주 周"이고 이름은 "도 鍍"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엄청 똑똑하고 사람들에게 친화감을 주어 곁에 모이는 백성들이 만여명이 넘었답니다.
성인이 되 갈수록 주변에 모이는 백성들의 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스스로 "후주천황"이라고 칭하며 南陽에 웅거하던 때가 "당나라 덕종" 때입니다.
[주왕굴 가는 길]
'주왕암' 우측 옆으로 올라 가서 우측으로 직각으로 꺽이고,
다시 좌측으로 직각으로 꺽이며 "주왕굴"로 올라 갑니다. 철옹성입니다.
"周王"은 자신의 세력을 믿고 '장안'에 도읍을 정하고 있던 "당나라"를 치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만,
패전하고 당나라 군대에 쪼껴 요동땅으로 도망을 칩니다.
"주도 周鍍"는 천여명의 잔존 군대를 이끌고 가족들과 함께 원주를 거쳐 이곳으로 피신을 왔다고합니다
"周王"이 도망와 피신 한곳이 바로 이곳 "주왕굴 周王窟"이었답니다.
당나라 '덕종황제'는 "주도 周鍍"를 잡기 위하여 당나라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다가
알아보니 신라 땅으로 도망을 갔다는 정보를 얻어 신라왕에게 역적을 잡아달라고 의뢰하였답니다.
신라왕은 즉시 '동평장사 마일성'을 상장군으로 삼아 체포에 나섰으나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이 철옹성이라 도져히 잡을수가 없었답니다.
[주왕굴]
"주왕굴"은 굴 앞에 폭포가 쏟아져 내려 안을 볼수 없어 수색하기가 어려웠답니다.
어느날 "주도 周鍍"가 세수를 하기 위해 폭포밖으로 손을 내밀고 세수를 하다가
신라 마장군에게 발각되어 화살로 저격 당해 죽었답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폭포수가 빙벽이 되 있습니다.
[周王窟]
"주왕굴"은 깊이가 2m쯤 되는 듯하고 2~3명 정도가 기거할수 있을듯합니다
그 당시 이곳에 "주도 周鍍"와 함께 있던 아들 "대전도군 大典道君"과 딸 "백련낭자"는
재빨리 도피하여 목숨을 부지 할수 있었답니다.
[주왕굴에서 나오는 길]
"주왕굴"에서 나오며 바라본 앞면....철옹성입니다.
마장군이 주왕의 목을 신라왕에게 바치니 신라왕은 사신을 시켜서 주왕의 머리를 가지고
당나라로 가게했답니다. 그런데 사신들이 압록강을 건널 때 돌연히 풍랑이 크게 일어나며
배가 전복되어 주왕의 목을 잃어버려 강을 건너지 못하고 뒤돌아 왔다고 합니다.
한편 어느날 태풍이 심하게 일고 모래와 돌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사람들은 문밖에 얼씬도 못했는데
이때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이 주왕의 시체를 거두어 석병산 북쪽에 장사하였으니
그날이 압록강에서 주왕의 목을 실은 배가 전복된 그날이라고 합니다
장사를 지낸 후에 분봉이 없는고로 후세 사람들이 주왕의 무덤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자하성]
'周王"이 신라군에게 저항하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 "자하성"이 세월을 머금고
황폐하게 있습니다.
'周王'은 약3년간 이곳에서 버티었다고 하네요.
[大典寺에서 바라 보는 '旗岩']
"주도 周鍍"의 아들이 "주희 周曦"였으며 호가 "대전도군 大典道君"이었습니다
아들은 엄청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大典寺"를 건립했다는 설이 있더군요
[大典寺에서 바라 보는 '장군봉']
'旗岩' 좌측에 상대적으로 초라한 "장군봉"이 성질이 난듯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
[大典寺 입구]
"국립공원 주왕산"을 대표하는 "旗岩"이 "大典寺"를 굽어 내려 보고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내려 가며 뒤돌아 본 "周王山"] 3시 25분
장군봉과 旗岩을 뒤로 하며 "낙동정맥11구간 - 주왕산 1 구간"을 마칩니다
총산행 거리 : 약20km (GPS로 잰 거리)
총 산행 시간 : 9시간 40분
황장재 출발 오전 5시 45분
주왕산 주차장 도착 오후 3시 25분
[旗峰을 배경으로 한컷]
9시간 40분을 걷고 또 다시 곧 바로 "소백산"으로 갑니다.
"소백산 산행기"도 다음편에 계속 이어 집니다.
[왕언니가 준비해준 육계장과 과메기]
거인산악회 산행대장을 맡고 계시는 '왕언니'가 육계장과 과메기를 특별히 준비해 왔습니다
다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너무 맛있어 정신없이 먹고 난 다음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먹고 난 다음이라도 먹음직해 보이시죠? ㅎㅎ
배고픈 산또라이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은혜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파란문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