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맥 산행기들/검단지맥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 산행기

파란문 2008. 8. 2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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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 
     난장판의 광란 같았던 그 뜨거운 여름
     영원히 그 속에 뭍혀 숨쉴수 없을것 같던 그 여름도
     수십억년의 법칙 앞에선 꼼짝 못하는 듯
     그도 상큼하게 날씬한 미니 스커트를 입고 맑고 시원하게 다가 오는 가을 앞에선
     또 나의 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폭우와 폭염으로 지랄발광하던 그 모습 축 늘어떠리고....
     8월 24일 일요일 새벽 일찍 집을 나서 분당 신도시 "미금역"으로 승용차를 몰고 가
     역 근처에 주차 시키고 7시 25분경 전철 분당선을 타고 모란역에 가서,
     다시 지하철 8호선으로 갈아 타고 "남한산성입구역"으로 갔습니다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 앞]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를 나서니 오전 7시 50분이었으며
     이렇게 쾌청한 날씨는 금년들어 처음인듯 오늘 산행을 후원하는듯했습니다
     이런 날씨이면 얼마던지 걸을수 있겠다고 느끼며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남한산성입구 유원지로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산이 "청량산"이며 "남한산성"이 있는 곳입니다
     지하철 '남한산성입구역'이라고 해서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남한산성입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산성입구역에서 산성입구까지는 무지무지하게 멀었습니다
     제가 걸어서 삼십여분이 걸려으니....버스로 두세정거장을 더 가야하는 거리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버스로 환승을 하더군요
     
     [을지대학]
     을지대학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규모가 상당하더군요
     원래 을지로에 을지병원이라고 우리나라 癌연구치료의 선구자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국립 암 센타를 비롯한 많은 암퇘치 병원들이 앞다투며, 암은 이제 종기 치료 정도로
     쉽다고 말들을 하더군요. 많은 발전을 해 수명 연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죠?
     
     [남한산성 입구 유원지]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하는데 그 중에서 이곳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하며 다양한 시설을 갖춰놓고 있었습니다
     
     [산성입구 공원과 복합 주차장]
     유원지에 이런 주차장을 마련했다는게 이제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섰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듯하군요
     
     [노천 극장과 민속공예 전시관}
     앞의 광장이 노천 극장이며 뒷쪽 건물이 민속공예 전시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공원 안내도]
     
     시설을 잘 해놨죠?
     옆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름 한철 보내기에 안성맞춤
     
     [갈림길]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바로 올라 가면 남한산성 남문으로 바로 올라 가며,
     우측 '약사사' 방향으로 가면 등산로로 남문을 가더군요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쉽고 간단하게 20여분에 남문에 도달할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등산이 큰 목적이므로 우측 '약사사' 등산로를 택했습니다.
     
     [등산로]
     조금 올라 가니 좌측으로 오로지 산길로만 가는 등산로가 
     등산 못하는 분들은 오지 말라는듯 좁은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산성까지 계속 오르막이더군요
     
     [약사사 오르는 산로]
     이 등산로를 올라 보니 왜? 여기에 山城을 쌓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가파르기 때문에 적군들이 함부러 접근 할수 없겠더군요
     경사가 가파르기에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약사사]
     조그만 절이었으며 특별한 구경꺼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약사사]
     약사전이 있으면 석가모니나 아미타불을 모시는 절이 아니고 
     병을 치료해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절이라는거 이제는 모두 아시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여기까지 1시간5분이 걸렸습니다
     
     약사사에서 산성까지는 더 가파른 경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사를 2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니
     앞으로 여기 오셔서 오르실 분들은 큰 걱정 않하셔도 되겠습니다..20분 정도야..ㅎㅎ
     저는 당시 이런 경사라면 괴로울거라 걱정하며 올랐습니다. 
     초행길은 언제나 예측을 할수 없어 더욱 힘이 듭니다
     
     [정상이라고 할수 있는 삼거리 정자]
     '약사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이런 쉼터 정자가 처음으로 나오는데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물도 마시고...
     남한산성에서 불곡산 종주를 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바로 가더군요
     그러면  시간이 무지무지하게 단축 할수있어 종주 그 자체를 하는데는 좋겠더군요
     그러나 저는 종주도 종주이지만 "남한산성"을 어느 정도는 돌아 보고 가야 산행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수 있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오른쪽으로 가면 한시간반을 단축 할수 있더군요
     
     남한산성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좌측 길로 향했습니다
     오늘 산행기의 대부분은 여기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는 온통 숲으로 뒤덮인 숲터널이라
     외부를 조망하기가 어려워 산행기에 올릴만한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왼쪽 남문을 향해 가던 중에 
     이 산도 육산이라 숲으로 뒤덮여져 산행시에 외부를 조망할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여기서 외부 세상을 아주 잠깐 볼수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남한산성의 "守御將臺"가 있는 봉우리이며
     남한산성의 主峰인 "청량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南漢山城이 있는 산 이름을 잘 모릅니다
     북한산성도 한강 북쪽에 있는 산이기에 그냥 북한산이라고 하는 그 산에 있는 산성이라 
     북한산성이라 하드시, 남한산성도 한강 남쪽에 있는 산에 있는 산성이라
     남한산성이라 합니다. 남한산성이 있는 산은 '청량산'입니다
     청와대 뒷산을 일반적으로 북악산이라 하지만 정식 명칭은 白岳山입니다
     청량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우리나라 전역에 여러 곳 있습니다만
     안동과 봉화 사이의 퇴계선생의 자취가 흠뻑 젖어 있는 청량산이 제일 유명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남한산성이 있는 이 청량산이 더 유명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청량산 이전에 남한산성이 더 앞서서 청량산은 빼고 그냥 남한산성이라해서 그러나?...
     
     조금 나아 가니 남한산성의 웅장한 성벽이 역사의 깊은 수렁으로 집어 넣는듯...
     
     [남한산성의 南쪽 門인 至和門]
     남한산성의 4개 대문중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규모가 가장 크고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남한산성의 主門이라 할수 있는 至和門이 나타 났습니다
     이 至和門을 至和門이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반명사인 南門이라고 부릅니다
     
     [至和門 - (南門)]
     저는 실로 오랜만에 이 문 앞에 섰습니다
     언젠가 한번 와본적이 있다는 것 외에는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된듯합니다.
     걸어서 오른 것도 아니고 아마 승용차를 몰고 관광차 왔었던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이 문으로 자동차가 통과하여 성안으로 들어 간것 같은데 지금은
     공원화하여 아름답게 주변을 잘 단장해 놨더군요
     
     [至和門 - (南門)]
     남한산성에는 4개의 대문과 16개의 暗門이 있다고 하는데, 
     이 문이 가장 크고 웅장하며 門의 현판이 남아있는 유일한 대문이 이 至和門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현판을 보면 玉和門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런가?
     山城門의 현판은 城門의 밖에 달지 않고 城안쪽에 다는군요..호~
          
     至和門 에 대한 설명을 보고 옥화문이 아니라 지화문이란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至和門의 오른 쪽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至和門의 오른 쪽으로는 '수어장대' 서문, 북분, 동문으로 南漢山城을 한바퀴 뺑도는 
     종주코스가 펼쳐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무지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왔다는 얘기는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 와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지, 
     이 주변 계곡에는 여러번 왔다 갔다는 얘기입니다. 왜 왔다 갔냐구요? ㅎ
     여기 남한산성 주변 계곡에 유명한 보신탕집, 닭도리탕집이 수없이 많커던요..ㅎㅎ
     
     至和門에서 내려다 본 城밖
     좌측 앞에 보이는 나무가 보호수로서 350여년된 느티나무로서 성문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여러곳에 심었다고 하는군요
     
     至和門에서 바라 본 산성 안
     1636년12월 14일부터 1937년 1월 30일까지 갇친 이 城 안에서 ...............
     "죽어서 살것인가, 살아서 죽을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오랑캐의 황제에게 머리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의 현장은
     오가는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는지..그저 평온하기만했습니다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도망친 고려의 고종도...
     임진년에 쪽바리들의 침공에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북으로 북으로 도망친 조선의 선조도...
     북의 김일성이 쳐 내려온다고, 한강 철교를 폭파하고 또 백성과 서울을 버리고 남으로 남으로 도망친
     이승만 독재정권도...
     병자년에 하필이면 얼마나 토길 곳이 없으면 
     여기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조선의 쿠데타 정권 인조만 하겠으랴~~
     
     공적비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을까...
     1636년12월 겨울
     이 남한산성에는 인조라는 쪼다리 임금이 있었고,
     체찰사로서 난국의 해결을 시간에 맡기는 양다리 걸치기의 명수 영의정 김류가 있었고,
     의로움과 충성심으로 절대 굴복은 없다고~오로지 싸워여 한다는 주전파  예판 김상헌이 있었고,
     매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임금이 살길은 
     말이 화친이지 실제는 항복이라는 말을 비틀어 화친이라고 말 하는 이판 최명길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도 어느 누구도 이들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굴욕적 역사를 떠올리기조차 싫은지 모두 입을 닫고 쉬~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적 평가를 내려 주시겠습니까?
     (에구~ 저도 뭐라 소신을 밣히기가 그렇고 그렇군요~~닝기리~)
     
     [산성터널]
     남문(지화문)에서 조금 산성 안으로 내려 오니 삼거리 좌측으로 터널이 뚤려 있더군요
     성남과 광주를 남한산성 내부를 관통하는 도로가 터널과 함께 뻥 뚤려 있는줄 이제서야
     알았고, 남문으로 차량통행을 금지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도 촌놈, 옛놈이군요
     세월이 많은 것들을 바꿔 놓은 줄도 모르고 있으니
     
     산성 안은 문화 유적지라기 보다는 하나의 유흥도시를 이루고 있더군요
     
     산성 안은 분지를 이루고 있어 포근한 느낌마져 들었으며
     이곳에 萬海 한용운선생의 기념관이 있더군요. 백담사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남한산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 여겨...
      "남한산성 전체 안내도"를 남한산성 홈피에서 쎄비 해 왔습니다
      이제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시죠? 저도 이걸 보고 역사탐방을 간것입니다
     
     [산성 로타리 - 鐘樓]
     이곳에 옛날에는 鐘樓가 있었던 자리이며 城의 중심부이기에 종소리가 城 구석구석까지
     들려 여러가지 명령을 내리는 역활을 했다고 하는군요
     이 남한산성 한가운데 서니 지금으로부터 370여년전 굴욕의 역사가 뇌리를 두둘겨 패는군요
     임진왜란이 어떻고 일제침략이 어떻고 독도가 어떻고 하면서
     최고로 비참했던 이 南漢山城과 얽혀있는 병자호란에 대해선 말하는 사람들이 별로입니다
     남한산성 앞 삼전도에서 머리에 피가 나도록 땅바닥에 쳐 박으며
     청태종에게 아홉번이나  절을 하며 굴욕의 항복 맹서를 한 인조 -
     인조가 누굽니까?
     조선왕조 왕들중 최고로 의심이 많았던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개망신 당해 가며 개피를 보며 북으로 북으로 도망을 가고......
     전란이 끝나고는 오로지 明나라에만 충성을 다해 왕권만 유지 하려한 못난이 선조
     당시 중국의 상황은 후금이 세력을 키워 明을 위협하고 있었는데도 ....
     그래도 광해군은 양다리 외교를 펼쳐 후금과 명나라를 함께 아우러는 외교를 했지요
     이러한 광해군의 외교정책을(물론 여러 가지 다른 꼬투리가 많지만) 꼬투리로 잡아 
     쿠데타를 일으켜 불법 왕위에 올라 앉은 인조 조정- 明나라만 섬겼죠
     후금의 누루하찌가 明을 멸망 시키고 靑나라를 세우니, 明나라에게만 외교를 고집했던
     인조는 하루 아침에 청태종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그것이 바로 병자호란이지요
     요즘도 편향 외교라는 비판이 많이 있는데 병자호란을 교훈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천주교 순교비]
     정조대왕이 의문의 급서를 하고 어린 순조를 왕위에 올려 놓고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죠
     그때부터 천주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기 시작했었죠?
     그런데 그런 천주교 신자들을 이곳 남한산성에도 가두고 처형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천주교 순교지로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이곳에서 가까운   천진암이죠?
     
     [산성 관리 사무소와 역사기념관]
     동문쪽으로 내려가니 산성관리 사무소와 역사기념관이 있었습니다
     주차장도 넓구요
     제가 오늘 이 산성 안으로 들어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 곳에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곳에 있다는 비석을 하나 찾으려고 귓뜸만 듣고 찾아 온것입니다
     
     이 곳 주변 주차관리원과 음식점 주인등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이 비석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찾아 온 제가 훨신 더 잘 알고 있어서 꺼꾸러 설명을 해 줬습니다
     듣는 분들이 놀라더군요.. "어~? 그런 사실이 있는거에요? ~~?"라며...
     위치를 찾아 냈습니다.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 끝에 바로 있더군요
     
          [서 흔남의 묘비]
          묘비의 위쪽은 깨어져 없어졌고, 남은 묘비마저도 마모되어서 확실한 형체를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묘비명에는 서흔남(徐欣男)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시간을 들여 여기 까지 오게된 서흔남(徐欣男)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1636년12월 14일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피난을 왔다는 것은 모두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사태가 다급해지자 인조를 모시던 신하들은 하나 둘 흩어져 도망가 버리고, 
     인조는 얼마 남지 않은 신하들과 함께 송파강을 겨우 건널 수 있었다고합니다. 
     강은 건넜으나 날은 어두워지고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흩날려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까지 올라 갈 일이 아득했답니다. 인조는 신하의 등에 번갈아 업혔으나 
     지친 신하들은 얼마 못 가서 주저 앉기를 거듭했다고합니다. 에구~~왕이나 신하나 모두 븅신들
     더구나 남한산성으로 가는 산길은 험했고, 
     때마침 눈이 깊이 쌓여 걸어서 올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 한 총각이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나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하네요. 
     인조는 그 총각에게 "나를 좀 업어서 성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에 그 총각은 나막신을 거꾸로 돌려 신더니, 인조를 업어서 성까지 한숨에 모시고 갔답니다. 
     남한산성에 무사히 도착한 인조는 산성으로 들어올 때, 
     그 총각이 불편하게 나막신을 거꾸로 돌려 신은 것이 못내 궁금했다고합니다. 
     그래서 "왜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느냐."고 물었고. 
     이에 총각은 "당신은 피난민 같은데, 만약 신을 바로 신고 오르게 되면 눈 위에 발자국이 나서 
     적군에게 들키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다."고 말했답니다. 
     인조는 그 총각이 너무나 신통하고 고마워서, "너의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답니다. 
     이에 총각은 인조가 입고 있던 곤룡포(袞龍袍)가 너무 좋아 보여서,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달라."고 하였답니다. 
     인조는 흔쾌히 자신이 입고 있던 곤룡포를 그 총각에게 벗어주었다고합니다. 
     이렇게 인조를 업고 무사히 산성 안으로 피신시킨 총각이 바로 서흔남이라는 총각이랍니다
     이 이야기는 正史가 아니고 野史임을 밝혀둡니다
     
          [인조가 내린 서흔남 공적비 - 정3품 가의대부(嘉義大夫)]
     산성안에 들어와서도 서흔남은 여러 활약을 펼쳤다고합니다. 
     청나라의 군사가 철통같이 포위하여 산성 안과 밖의 교통이 끊어지자, 
     그는 거지 행세를 하거나 적군으로 변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행세를 하면서 적진을 통과하여 
     삼남지방과 강원도 등지로 가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답니다. 
     이렇게 서흔남은 전국 각지의 근왕병 진영에 뜻을 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삼 차 왕래하여 적의 동태를 보고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과의 전투에도 참여하여 청군 3∼4명을 죽이는 공을 세웠다고도 하네요.
     소설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서날쇠'로 나오지요?
     하찮은 천민임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서흔남에게 
     정3품의 가의대부(嘉義大夫)라는 파격적인 품계를 내렸으며 그 공적비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正史입니다
     이런 유적이 이렇게 방치되다시피 있는게 안스러웠습니다
     
     이곳 안내판에는 正史에 대한 기록만 있더군요
     
     [개원사 가는 길 입구]
     이제부터 남한산성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불곡산을 가야합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주차장 안쪽으로 '개원사' 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열두광주리'간판이 있는 길로 똑 바로 가면 됩니다
     
     [개원사 일주문]
     조금 올라 가니 개원사 일주문이 있었으며....
               
               [등산로 입구]
               일주문에서 2~30m정도 올라 가니 좌측으로 등산로 입구가 있었습니다
               개원사를 구경하려면 올라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등산로로 진입해야합니다
     
     [개원사]
     저는 올라 가서 개원사를 구경했습니다
     
     [개원사]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승군 본영을 두었던 절로서 
     벽암 각성선사가 조선 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들을 지휘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였으며, 
     그후 수도를 방어하는 호국승군의 도장이 되었던 곳이라합니다
     오늘은 절간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개원사를 구경하고 다시 일주문 쪽으로 내려와 등산로로 접어 들었습니다
     
     [남한산성 암문]
     한참을 오르니 암문이 暗門같지 않게 매우 큰 暗門이 나왔는데...
     남한산성에는 북한산성과 달리 암문의 이름이 없고 번호로 메겨져 있더군요
     워낙 많은 16개나 된다고 하니 번호로 표시한듯합니다
     
     암문 위로 오르니 잘 만들어진 남한산성 일주 코스가
     저에게 한바퀴 돌고 가라고 하는듯합니다
     
     산성 일주 코스는 등산로라기 보다는 트렉킹 코스라고 하는게 더 알맞을듯하군요
     지금 이곳은 집에 와서 자료를 보고 알았는데 앞에 보이는 돌출 성곽이
     제3옹성이었습니다. 옹성은 세개가 있더군요.
     
     앞에 가운데 검푸르게 진하게 보이는 산이 청계산이며, 멀리 보이는 산이 관악산입니다
     
     남쪽으로 검단산이 보입니다
     이제 저 검단산 정상을 향하여 가야합니다
     검단산은 하남에도 유명한 검단산이 있는데 검단산 하면 그 하남의 검단산을 주로 말합니다
     남한산성 바로 옆에도 한자까지 똑 같은 검단산이 있습니다
     저 검단산은 여기에서 우측으로 빙 돌아서 가야하더군요
     
     첫번 만났던 暗門에서 우측으로 북쪽-즉 至和門(南門)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다시 위와 같은 제법 큰 暗門이 나옵니다
     이 暗門으로는 자동차가 다니고 있었으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검단산 정상까지
     연결된 유일한 군용도로이더군요
     이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검단산 정상에 다다릅니다
     
     성문을 나가 우측으로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따라 갑니다
     
     검단산으로 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잘 되 있었으며
     옆 산으로 등산로도 있었으나......
     
     이러한 안내판을 읽고는 포장도로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표지가 있는데도 산속으로 다니는 분들이 있더군요....저는 간 떨려서..ㅎㅎ
     
     [검단산 정상 갈림길]
     오른쪽으로는 실제 검단산 정상이 있는데 그곳엔 공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갈수 없고
     직진도 공군부대 가는 길이라 갈수 없으며
     사진에는 잘 나와 있지 않지만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중요합니다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면..........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검단산 정상입니다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공군 레이더 기지]
     원래 저곳이 검단산 정상입니다만 갈수 없고, 
     등산객들을 위해 이곳에 정상 표시를 해 놨더군요
     
          검단산(黔丹山·538.1m)
          이곳은 실제 520m정도이고 저 앞의 공군기지가 538.1m이랍니다
          10시 50분에 이곳에 왔습니다
          
     검단산 헬기장 건너편에 있는 출구를 통해 내려갑니다
     
     금단산 헬기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갑니다
     이 삼거리에 막걸리 파는 행상이 있었구요
     
     검단산에서 부터 불곡산까지는 길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길을 잃어버려 알바할 가능성이 많으니 가능한 산객들이 많이 몰리는 휴일에 가야
     길을 물어 보면서 찾아 갈수 있습니다. 
     오늘도 일요일인데도 이곳에는 산객들이 많지 않아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여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萬壽泉 약수터]
     여기에 오니 이미 11시 정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산성입구역에서 3시간10분이 걸렸습니다
     산성 안을 둘러 보지 않고 바로 오면 시간은 아주 많이 단축될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숲속을 걷기에 사진은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불곡산 까지 갑니다
     
     [왕기봉]
     정상같지도 않은 산정상이 불쑥 나왔는데 '왕기봉'이었습니다
          
          [왕기봉]
           11시 40분에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수천 약수터에서 40분 걸렸군요
          
     왕기봉을 내려가서....
          
     조막조막한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니....
     
     [뉴서울 골프장]
     밖이 보이는 곳이 우연히 나타나 반가웁게 바깥 세상을 구경했습니다
     제가 한참 골프를 즐길때 많이 이용하던 뉴서울 골프장이 보이더군요
     골프를 그만둔지 10년정도 됩니다. 한창때는 일주일에 아홉번을 필드에 나갔으며
     또한 한번 프로 테스트에도 나가봤는데....골프는 프로의 경지에 까지 가봤다는 얘기이죠..ㅎㅎ 
     그러나 골프는 저에게 즐거움을 주기 보다는 점점 더 시간과 돈을 앗아가고 스트레스를 주더군요. 
     엄청난 비용 들이는데도 운동효과는 적고,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 그런 운동이란걸 깨닳고, 
     물론 IMF 외환 위기로 사업도 시원찮고해서....ㅎㅎ골프를 완전히 멀리했지요. 
     10여년 동안 연습 한번 없이 지내다 얼마전 주변분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제주도에 가서 두번 라운딩을 했는데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좀 쳐서 돈은 다 따먹었죠. 
     오래동안 쉬었다고 동반자들이 우습게봤던것 같습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골프 그만두고 시작한것이 수영과 등산입니다.
     운동적인 면 특히 정신건강에는 골프와 비교 할수 없고, 경제적이고,
     혼자서 얼마던지 할수있고....저는 이 매력에 흠뻑 빠져 산과 물을 누비고 있습니다
     
     우측으로 서울시내와 북한산이 보이고....
     날씨가 그만입니다. 진정 또 가을은 오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엔 단풍이 물든 여러 산을 다니며 좋은 산행기를 쓰고 싶군요
     
     바로 아래 성남시가지가 눈앞에 와 있었습니다
     엄청 발전했습니다. 70년대초 서울 청계천 판자촌을 강제 철거하고 고가도로를 건설 할때
     갈곳없는 어려운 주로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백성들이 사는 판잣집 주민들을 
     지금 이곳 성남으로 강제 이주 시켰죠
     그렇게 탄생된 성남은 그 때가 언제인데..하며 이렇게 엄청난 도시로 탈바꿈을 했군요
     
     길을 따라 나아가니 하늘도 보이는 곳이 또 있더군요
          
     숲을 뚫고 나아가니
     
     [이배재 고개]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배재 고개'가 나왔습니다
     
     [이배재 고개]
     반갑습니다. 휴~
     성남에서 광주로 넘어 가는 고개 중에 하나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12시 15분
          
          [이배재 고개]
          원래 '이배고개'라고 하던지 '이배재'라고만 해야하는데.....
          '재'가 고개라는 말이죠? '역전앞'이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사용하니 저도 더 이상 꼬장대지 않겠습니다
     이배재의 유래에 관하여는 두 가지의 얘기가 있다고합니다. 
     옛날 경상도나 충청도 지방의 선비가 과거를 보고자 한양으로 갈 때 
     마침내 이 고개의 정상에 이르면 한양이 보이니 임금님께 한 번, 
     고향의 부모님께 또 한 번 절을 하여 이배재 고개라 한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제가 가장 존경하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다가 
     마지막으로 한양이 보이는 곳이라 임금님께 두 번 절을 하고 떠난 데에서 
     이배재라 한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한문으로는 '二拜재'라고 해야겠네요
     갈마터널이 뚤리기 전까지는 이 길이 3번 국도였다고하며, 
     3번 국도는 광주 이천 장호원 충주 문경새재로 뻗어 가지요
     
     이배재고개에서 갈마치 고개로 가는 등산로 들머리
     
     성남시계 종주 산행로 안내판
     건너편 광교산-바라산-우담산-하오고개-청계산 종주는 지난 7월초에 했습니다
     그 종주 산행기는 지금도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배재고개를 지나 산을 하나 넘었습니다
     
     [連理枝]
     울타리를 쳐 보호하고 있는 소나무 두그루 - 連理枝
     이 산의 명물이더군요
     자료 사진에서나 볼수있고 실물로 連理枝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데 운 좋게 여기서 보는군요
     저는 사진으로는 많이 봤으나 실물은 여기 連理枝가 처음입니다
     
     [연리지 소나무]
     진짜로 완전히 붙어 있습니다
     아래 연리지 설명은 재미없군요. 제가 아는 연리지에 대해 간단하게 알려드리죠
     중국 당나라의 왕 현종 모두 아시죠? 모른다면 공부 않한 사람입니다
     아들의 와이프 - 즉 며느리를  시아버지가 빼앗아 자기 마누라로 만든 당나라 왕 현종을 몰라요?
     그 며느리가 그렇게도 유명한 "양귀비" 아닙니까~~시아바지랑 새 살림차린 뇨자 ㅋㅋㅋ
     그 유명한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는 당나라의 운명이 다할 정도로
     楊貴妃에 완죤히 푹 빠진 玄宗이 정치는 나몰라라하고 everyday - everynight 둘이 붙어 놀았습니다
     국가는 망해가고....이런 양귀비을 주변 신하들이 가만 놔두겠습니까?
     쿠데타(안녹산의 난)가 일어나 현종도 어쩔수 없이 눈에 집어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양귀비를 
     비참하게 목메달아 죽게합니다. 에구 아까버라~~
     그리고는 왕실의 詩人인 백락천(白樂天)에게 詩를 지어  양귀비와의 사랑얘기를 노래하라고했는데 
     그것이 무지무지 유명한『장한가(長恨歌)』입니다.엄청 슬프다는 뜻이죠? 長恨이니....
     왕실의 詩人인 백락천(白樂天)의 詩를 감상해 보실까요?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玄宗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非命(비명)에 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詩를 되뇌었다고 합니다
     모르는 단어 설명해 드리죠
     비익조 모르겠지요?
     비익조比翼鳥는 날개가 각기 한쪽인 전설 속의 새가 서로 붙어야 날수있다는 중국의 전설속의 새이며
     두 나무 가지가 완전히 붙어 서로 영양 공급을 하며 사는 나무 - 연리지와 같은 의미로
     하늘에서는 比翼鳥, 땅에서는 連理枝가 되자고 현종과 양귀비는 약속 했다는것 아닙니까
     사랑의 표현도 이 정도는 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연애편지 쓸 분들 참고하세요
     그런데 양귀비가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 -그래서 長恨歌입니다
     
     [연리지에 대한 설명]
         
     연리지 소나무에서 조금 가니 '갈마터널위"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으나
     "갈마터널 밑에 난 도로는 숲으로 볼수가 없었습니다
     
     갈마터널 위에는 어느 종가 묘들이 있었습니다
     
     갈마터널위를 지나오니 옛길(구도로) 갈마치 고개가 나왔습니다
     갈마치 고개 옛길은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만드느라 터널화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사중인 터널 오른쪽 옆으로 내려가 갈마치 고개로 갔습니다
     
     [갈마치 고개]
     갈마치 고개도 "갈마 고개"로 하던지 "갈마치"라고만 해야 국문법에 맞죠?
     왜냐하면 '치'가 큰고개라는 뜻이니까요. 또 '족발' 야그하고싶군요
     '치'는 한문으로 峙이고 순 우리말로는 '티'라고 합니다
     제일 유명한 지명이 서울 강남에 있는 대치동입니다.
     대치(大峙)는 큰 고개라는 뜻이며 순우리말로는 "한티"라고 사용하죠
     왜 제가 이것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세요?
     저의 모교 휘문고등학교가 강남 대치동 한티(大峙)에 있어 알게 됬다구요 ㅎㅎㅎ
     '한'은 한아름 할때 한이구요~~ 호암산 한우물에서도 설명했지요? 큰우물이라고...
     '한티'는 강남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치동 개포동쪽으로 넘어 가는 큰 고개입니다
     그 고갯마루에 휘문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티 위의 휘문'이라한답니다
     
     [갈마치 고개 터널화 공사]
     다른 분들 모두 갈마치 고개라 쓰니 저도 더 이상 우기지 않을렵니다만 알고는 있어야죠?ㅎㅎ
     갈마치고개의 지명 유래에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고 성남시 문화유적 싸이버실에 설명이 되있더군요. 
     옛날부터 칡이 많아서 갈현(葛峴)이라 하였다는 설과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주고 떠났다고 해서 
     갈마치(葛馬治) 또는 갈현(渴峴)이라고 하였다는 설입니다. 
     평택임씨의 족보에는 갈현(渴峴)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성남시 문화유적 싸이버실에 나있더군요.
     여기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1시 15분
          
     갈마치 고개를 지나 영장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갈마치 고개에서부터는 무조건 '영장산' 이정표를 따라 가야합니다
     
     갈마치 고개를 지나 영장산 쪽으로 와 뒤돌아 보니 이제서야 지나온 산봉우리들이 보이는군요
     제일 멀리 레이다가 보이는 산봉우리가 검단산이고,
     그 앞 가운데 나무 오른쪽 볼록 솟은 산봉우리가 왕기봉,
     왕기봉 다음 조그마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연리지'가 있던 산봉우리입니다
     많이 걸었습니다. 다리가 좀 불편해 지기 사작합니다. 현재 약5시간반을 걸었습니다
         
     영생관리사업소 안내 팻말을 지나 모리야산 기도원 방향으로 갑니다
     
     어떤 안부가 나오는데 어디인지는 확인 못했습니다
     계속 직진합니다
     
     계속 직진해 가니 야탑동 도촌동 경계능선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계속 영장산 방향으로만 직진합니다
          
     숲속을 따라 직진하니...........영장산 정상 아래 막걸리 파는 행상이 나오고
     
     영장산 정상이 나왔습니다
          
          [靈長山 정상 표지석]
          413.5m이면 제법 높은 산인데 능선을 다라 와서인지 그다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오래 잘 잠들라고 靈長山이라 했다하며, 주변에 묘가 많았습니다
          2시 50분에 도착하여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리가 많이 아파 옵니다
          여기서 불곡산은 같은 분당이니 금방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아이구 죽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태재 넘어 불곡산 올랐다가 미금역까지 4시간20분을 더 걸었습니다. 에구~
          여기까지 7시간이 걸렸는데..닝기리~ 
     
     [영장산 정상부]
     여기서부터는 오로지 "태재"라는 안내판을 보고 가야 합니다
     좌측 광주와 특히 분당 신도시가 우측에 있어 갈림길이 무지하게 많으니 길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하며 조금만 이상해도 물어 물어 가야하더군요
     그리고 이정표의 안내가 일관성이 없어 혼란만 가중시켰으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영장산을 지나  일곱삼거리쯤에서 뒤돌아 본 영장산]
     이제서야 영장산이 제법 높은 산이란걸 실감합니다
     
     광주와 분당 사이의 경계인 산 능선까지 집을 지어 살고 있더군요
     건축허가를 어떻게 받았는지...이렇게까지하며 집짖고 살아야하는지....
     요기 사는 분들은 자연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겠죠? 전원주택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겐 혐오 대상인 곳에 산다는 험담을 속으로 하고 지나가는지도 모르면서..닝기리
     
     걷기 편한 율동공원 뒷 능선을...인생의 길을 느끼며....걸었습니다
     찔룩 찔룩하며..아이구 다리야~~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새마을 고개]
     율동공원에서 광주 신원리로 넘어 가는 고개
     
     [새마을 고개]
     여기서 또 다리를 주무르며 쉬고 있는데 MTB 동아리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 가더군요
     지금 시각 4시 30분
     
     처음으로 율동공원의 분당저수지가 숲사이로 살짝 보이더군요. 반갑다 친구야~!!
     
     갈림길을 지나
     
     숲 사이로 무덤군이 나왔는데....
     이곳이 '태재'바로 위의 한산 이씨 종묘더군요
     이 무덤군 아래 끝으로 가면....
     
     [태재]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이때 시각이 오후 5시 20분
     
     이곳 [태재]에서 불곡산 등산 들머리를 찾아 가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태재] 사거리입니다
     [태재]사거리는 태재를 넘는 新道路와 舊道路가 교차하는 사거리입니다
     분당이야 어느 길을 택해도 되지만 '불곡산'은 반드시 舊道路를 따라 가야합니다
     
     [태재 사거리]
     바로 앞의 舊道路를 건너 다시 新道路를 건넙니다. 
     신발보다 싸다는 타이어 가게쪽으로 가면 않됩니다
     우측으로 舊道路를 따라 500m쯤 갑니다. 
     
     웃태재가 나오는데...
     
     '애마'라고하는 음식점  옆길로 올라 갑니다
     
     '애마'에서 30m쯤 올라가면 좌측에 이런 '채선당'이라는 음식점이 있고..
     건너편에
     
     '채선당'음식점 건너편에 '불곡산' 들머리가 이런 모양을 하고 기다립니다
     여기만 찾으면 이제부터는 일사천리입니다.
     계속 똑 바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속리산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한남금북정맥이 漢南은 한남대로 錦北은 금북대로 서로 제갈길을 가는 
     안성의 칠장산(492m)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쳐 김포 북서쪽 끝머리 문수산(37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한남정맥. 
     이 한남정맥이 안성의 칠장산에서 용인시 북서쪽 석성산(471m) 할미성 북쪽 330m봉에 이르면 - 여기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위 봉우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北으로 黔丹지맥을 분가시킵니다. 
     이 黔丹지맥은 불곡산(335m)에 이르러 성남시와 광주시 경계를 이루며 계속 북진합니다.
     지금 지나온 태재를 지나 영장산(414.2m)~갈마치 고개~이배재 고개~왕기봉(499m)~검단산(黔丹山·538.1m)~
     청량산(482.6m·남한산성 수어장대)을 지나 연주봉(465m)에 이르러 동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이어지는 능선은 
     '은고개'를 지나 하남시민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용마산(595.7m)~검단산(黔丹山·657m)을 하늘에 올려 놓고는 
     그 긴 黔丹지맥의 다리를 한강의 팔당호 아래로 푹 담금니다
     오늘 성남시계종주코스인 黔丹지맥의 상당 구간을 주파했습니다
     
     불곡산을 오르면서 첫번재로 맞는 쉼터
     여기에 오니 오후 6시00 정각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조금 쉬고....
     
     [불곡산 정상]
     오후 6시 20분 석양이 완전히 물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불곡산 정상석]
     해발 312.9m 제법 높은 산입니다. 분당에 사시는 분들은 아침 저녁으로 이용하면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되겠더군요
     佛谷山은 양쪽 계곡에 절이 있다고해서 불곡산이라 했다는데..절간은 어디있는지...
     
     [한국토지공사]
     불곡산에서 내려 오니 한국토지공사 안이더군요
     이때 시각이 오후 7시 10분
     한국토지공사 정문을 통과하며... 경비에게 수고한다고 한마디 인사 해주고...
     고맙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또 답례까지 받고...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시 미금역까지 걷는데...이제는 다리가 잘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다리를 질질 이끌고
     
     [미금역 로타리 부근]
     오전 7시 50분에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를 나와
     남한산성 유원지-약사사-남한산성 남문-남한산성 안- 관리사무소앞 서흔남 비석- 개원사-암문-
     검단산- 만수천 약수터-왕기봉-이배재 고개-연리지-갈마치 고개-영장산- 일곱삼거리-
     율동공원뒤 능선-새마을 고개-태재고개 능선- 태재- 불곡산 들머리-불곡산-토지공사-미금역
     저녁 7시 30분이었습니다. 장장 11시간 40분간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어둠은 모든 물체를 가렸지만
     새로운 불빛이 그 위를 덮고....
     뭐하러 이짖을 하는지 한숨 지으며
     오전에 세워 놨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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