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
『한탄강 주상절리길:도감포길-선사유적길』
"도감포"에서 "전곡선사유적지"까지
['한탄강 "도감포'에서 '전곡선사유적지'까지]
"한탄강 주상절리길:도감포길"과 "선사유적길"을 갑니다.
그런데 <도감포길>은 <도감포>에서 <남계리>를 통과하여 <은대리성 전망대>까지 진행하는 길인데,
새로이 <한탄강 남쪽 강변길>에 만들어진 코스가 있어
그 길을 이용하여 <한탄강관광지> 앞의 <세월교>를 건너 <전곡선사유적지>로 갑니다.
['남계대교' 앞 삼거리] 9:08~9:15
2022년 5월 17일 (화) 약간 흐림
"한탄강 주상절리길:도감포길"의 출발지는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 있는 <남계대교> 앞 삼거리인데
이곳 삼거리까지는 대중교통이 없어 <전곡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택시 요금은 9,000원이었으며, 7~8분 걸렸습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종합안내판']
['도감포길'과 '선사유적길' 안내도]
<남계대교> 앞 삼거리에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종합안내도"가 있습니다.
기존 <제1코스 도감포길>은 <한탄강 북쪽 강변길>로 <남계리>를 통과하여 <은대리성>으로
갔습니다만, 오늘 저는 새로이 만들어진 <한탄강 남쪽 강변길>로 <전곡선사유적지>로 바로 갑니다.
['도감포' 가는 길] 9:16
<남계대교>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 가면....
['차량 차단기'] 9:17
<도감포>로 내려 가는 길에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 있습니다.
<도감포>를 둘러보고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감악지맥 끝봉'] 9:19
<한탄강> 강변으로 내려 가면 건너편에 <감악지맥>의 끝봉우리가 추억을 불러 일으킴니다.
<감악지맥>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제가 2009년 3월에 두발로 쓴
"[한북감악지맥3구간] 간파고개-마차산-아마니고개-도감포" 여기 클릭 참고 하세요.
['남계대교'] 9:22
<한탄강>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남계대교> 밑을 통과하는데, 이 다리는 건너편에 있는
"한반도 통일미래센터"를 위해 만들어진 다리라고 합니다
참고로 <한반도통일미래센터>를 보여 드리면...
['한반도통일미래센터'] 홈피에서 캡춰한 사진입니다.
<한반도통일미래센터>는 <통일부>가 설립 운영하는 시설로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연수시설이라
합니다. 현재는 <코로나 생활치료센타>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택시기사한테 들은 얘기
['한탄강 주상절리']
<한탄강>이라는 이름이 소멸하는 곳이기에 <한탄강의 마지막 주상절리>가 멋을 뽐내고
['한탄강-임진강' 합수머리]
이어서 <한탄강>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도감포 합수머리"에 도착합니다.
앞에는 <연천군 전곡읍 마포리>와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를 연결하는
"마포대교 馬浦大橋"가 보이는데, 예전엔 <마포나루 馬浦津>가 있던 자리랍니다.
"도감포[都監浦, 陶哥湄, 陶家湄, 甕岩灘]" 지명의 유래는 <연천군 홈페이지>를 인용합니다.
"남계리 남쪽,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던 포구 마을. 옛 지리지나 여러 기행문에는,
이곳 합수머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전곡읍 마포리 지역에 넓게 펼쳐진 꽃답벌과
미산면 동이리 썩은소 앞의 강폭이 좁아지는 지점까지의 지형이 항아리의 형태와 닮았다 하여
'독안이[壺內]' 또는 '호구협(壺口峽)'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항아리와 닮았다고 하는 지형 안에 있는 도감포의 원래 의미는 '항아리 형태의 지형
안에 있는 포구'란 뜻으로, '독안개[壺內浦]'또는 '독안이'로 불리던 것이 '도감', '독암'으로 음이
변하여 한자로 지명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도감포' 외에 여러 한자 명칭으로 표현되었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임진강을 따라 올라온 새우젓, 소금 배들이 정박하며 연천 지역에서
생산되었던 곡물, 땔감, 도자기 등을 물물교환하던 큰 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에는 제주 고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동이리' 조망]
건너편엔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가 있는데,
저 동네분들은 여름에 다른 곳으로 피서 갈 필요 없을듯...
['임진강 동이대교' 조망]
북쪽에는 <임진강>이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등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 오고 있습니다.
<37번국도>가 지나는 "동이대교"가 현수교로 건설되어 먼곳에서도 두루 보이더군요.
이 강변의 좌측엔 <평화누리길11코스 임진적벽길>이 이어지고,
우측엔 <연천 주상절리길:합수머리꼭지길>이 이어 집니다.
['차량 차단기' 앞 갈림길] 9:35
<도감포 합수머리>를 둘러 보고 다시 <차량 차단기> 앞으로 돌아 왔습니다.
기존 <도감포길>은 직진하여 <남계리>를 통과하여 <은대리성>으로 가지만
오늘 저는 우측 새로난 길로 진행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도감포 주변 위성지도>를 보고 가겠습니다.
['도감포 주변' 지도]
<현위치>에서 기존 <도감포길>은 출발지로 나가 <남계리>를 통과하여 <은대리성>으로 가지만
오늘 저는 우측으로 새로 난 길로 진행하여 <한탄강>을 건너는 <징검다리> 방향으로 갑니다.
[신설 '도감포길']
<차량 차단기>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이렇게 넓직한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잠시 진행하면...
['GMI선교사훈련원'] 9:41
지도에 "GMI선교사훈련원"이라는 콘도같은 건물을 만나고
[징검다리] 9:44
이어서 <한탄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만나 건너 갑니다.
이 징검다리는 비가 좀 내리면 이용 할수 없겠더군요.
[징검다리에서 진행방향 조망]
<징검다리>를 건너며 진행방향을 조망하고
['장검다리를 건너 뒤돌아 본 광경] 9:47
<징검다리>를 건너와 뒤돌아 본 광경이고
['한탄강 주상절리길']
이제부터 <한탄강>의 남쪽 강변길을 진행합니다.
[건너편 '남계리' 조망] 9:59
<남계대교> 앞 <도감포 삼거리>에 있는 <도감포길 안내도>에는 건너편으로 안내되지만...
['잔도'] 10:09
남쪽 강변길은 거의 완벽하게 길을 조성해 놨는데 사람들의 통행흔적이 거의 없어 놀랐습니다.
보기는 그럴듯 하나 거미줄이 쳐져 있고, 먼지가 수북했습니다.
포장한 오솔길과 데크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런데 이렇게 길을 잘 만들어 놓고 이정표나 안내도 하나 없다니 더 놀랐습니다.
<연천군>은 왜 안내와 홍보를 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강변길] 10:13
[다리]
<징검다리>에서 25분 정도 진행하니 다리를 하나 건넙니다.
[뒤돌아 본 '동이대교'] 10:16
다리를 건너 뒤돌아 보니 <임진강>에 있었던 <동이대교> 현수교 윗부분이 보이고
[고기잡이]
<한탄강>에서 고기를 잡는 분이 너무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릴적 시절을 추억케하는데, 꼭 해 보고 싶은 족대로 고기 잡는 광경.....
[데크길]
[강변길] 10:36
계속해서 25분여 더 진행하면 길은 강변으로 내려 가며
지난 <찬탄천 에움길>의 종점이었던 <차탄천-한탄강 합수지점>에 있는 <은대리성>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이쪽에서 바라보는 <은대리성>이 인상적입니다.
별도로 성곽을 쌓을 필요가 없는 천혜의 古城이군요.
[차탄천'-'한탄강' 합수지점] 10:42
진달래 벚꽃이 화려하게 만발하던 지난 봄에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신록이 뒤덮고
<삼형제바위>가 여전히 형제애를 보여 주고 있는듯 합니다.
['은대리성'과 '학소정'] 10:47
<은대리성>의 동쪽 끝지점에 절같은 집이 있어 궁금했는데
"학소정 鶴巢亭"이라는 연천군이 설립 운영하는 "국궁장"이었습니다.
오리지날 "학소정 鶴巢亭"은 "은대리 隱垈里"라는 글자 그대로 <숨어 지내는 마을>이라는
지명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 "김양남 金楊南"이라는 고려 말~조선초 선비가 정자를 짓고
은거하며 세속과 멀리 하며 살았다는 곳이랍니다.
<차탄천 주상절리 에움길>에서도 언급한바 있는데 한번 더 언급하면...
<김양남>도 <이양소 李陽昭>와 <이방원>이와 함께 고려말에 과거에 급제했는데
동문수학 할 정도로 서로 친분이 두터웠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조선>을 실제 만든
<이방원>은 자기를 도와줄 여러 사람이 필요했으나 대부분의 인재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답니다.
<김양남>도 <이양소>와 같이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에 대한 신하의 절개를 지키려고
<전곡읍 은대리隱垈里>에 은거했다는데 <은대隱垈>라는 지명은 <김양남>이 <학소정 鶴巢亭>을
짓고 은거하며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김양남>은 "강릉 김씨의 중시조"랍니다.
그의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고, 묘는 '연천군 전곡읍 고릉리 능골'에 있답니다.
['세월교']
<학소정>을 지나면 "세월교"를 만나 건너 갑니다.
"세월교 洗越矯"라는 단어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이죠.
<세월교>는 주로 水位가 다른 논에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 대는 水路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한
水路橋로 주로 산간지역에 많이 있지요.
여기에 있는 <세월교>는 현재 그런 용도는 아니고 차량도 통행하는 다리 역활을 합니다만
아무튼 그런 비슷한 의미인 '간이다리'로 <세월교 洗越矯>라는 단어를 사용한듯 보입니다.
['세월교'] 10:54
['은대리성' 조망]
<세월교>에서 지나온 <은대리성>과 <학소정>을 뒤돌아 보고
['한탄강 관광단지' 조망]
남동쪽으로는 유명한 <한탄강관광지>가 가까이있고
그 뒤로 <소요산>도 조망됩니다.
[오름길] 10:57
['선사로']
<한탄강> 강변 <세월교>에서 도로로 올라 가면
['전곡선사유적지' 정문] 11:00
['방문자센터']
"전곡선사유적지" 정문을 만나며 먼저 <방문자센터>로 들어 갑니다.
십몇년전에 두어번 다녀 간적이 있습니다만 그때와 비교하면 해탈한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지게 변모되 있어 뿌듯한 마음으로 답사를 시작합니다.
['방문자센터' 내려 가는 통로] 11:03~11:18
<방문자센터>가 지하로 내려가서 지하에 있는줄 알았는데, 지하는 아니었고 우측이 낮아서더군요.
이나저나 <방문자센터> 출입구를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 놓은 곳은 처음 봅니다.
뭔 나이트클럽 들어 가는 통로 같더군요. ㅎㅎ
['방문자센터 안내원']
['방문자센터']
<방문자센터>로 내려 가니 안내원이 친절하게 맞아 주는데
<전곡선사유적지>의 규모가 엄청 넓기에 미리 예습을 하고 가는게 좋다고 안내해 줍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이곳 <전곡>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는 도중에
시베리아 추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주하다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고기잡이, 농경, 적의 침입 방지 등에 적합한 이곳에 정착하지 않았을까.....라는 얘기를 해 주며
그 이주자들이 "배달의 민족"이 아닌가하는 학설을 안내원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답사자가 안내원에게 설명을 해 주는 특별한 경우죠? ㅎㅎ
"배달 倍達"이라는 단어는 아시아-유럽 대륙에서 가장 큰 호수인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호수-Baikal 湖水"를 중국놈들이 한자로 표기 할때 "倍達湖"로 표기하며,
우리는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인 "倍達"을 그대로 우리말로 音譯한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외래어이니 <배달 倍達>에서 의미를 찾을려고 하면 도저히 찾을수 없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짜장면 배달 민족'? ㅎㅎ
<배달 倍達>의 뜻을 확실히 알려면 <바이칼 호수>의 <바이칼>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겠죠.
러시아語에서 유래하는 "Baikal"은 "bai 富者"라는 단어와 "kal 호수"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배달의 민족"이라는 말의 어원은 "바이칼호 주변에서 살던 민족"이
척박하고 추운 동토의 땅에 살다가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주한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일제시대 식민사학에서 시작된 "배달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아직 역사적으로 정립되지도
않았기에 <배달의 민족>이라는 말을 함부러 사용하면 않되겠습니다.
['방문자센터' 앞] 11:18
<방문자센터>를 나가니 <방문자센터>가 지하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전곡선사유적지>는 화려한 공원으로 완전 탈바꿈 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 11:19~11:36
입구에서 부터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이 환영 인사를 하는데
우측에 있는 <생각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현위치]
이곳에 있는 안내도에 제가 진행한 루트를 표기 했습니다.
[마스코트] 11:36
<연천이> <고롱이> <미롱이>가 환영하는데
<선사시대> 어린이 치고는 예쁘죠? ^.^
[선조들의 생활상]
<선사시대>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조형물로 재현해 놧습니다.
"선사시대 先史時代"의 의미를 학실히 아시나요?
'문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시대'를 "역사시대 歷史時代"라 하고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선사시대"라 하죠
그러니까 "역사시대 이전의 시대"를 "선사시대 先史時代"라고 한다는거...
[공원]
<선사유적지>를 둘러 보며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공원으로도 훌륭합니다.
['물거미' 조형물] 11:39
<토층전시관> 방향으로 조금 가면
"물거미" 조형물을 만납니다.
<천연기념물 제412호>이며 이 지역에서만 서식지가 확인된답니다.
['주먹도끼' 발견지] 11:40
이어서 <전곡선사유적지>가 최초로 확인되는 "주먹도끼"가 발견 된 곳을 만남니다.
이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고고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고고학계가 온통 들썩거리며
우리나라 고고학의 새 장을 열게 되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답니다.
<주먹도끼>를 발견한 사람과 그 과정이 재미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발견된 "주먹도끼"]
[전곡선사유적 최초 발견자 "그렉 보웬 Greg Bowen"]
"그렉 보웬 Greg Bowen, 1950~2009"
1977년 <동두천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주한 미 공군의 <상병>이었던 이 사람이 <주먹도끼>를
최초로 발견하고 세계적 검증 과정을 거쳤답니다. 이 사람은 당시 미공군의 '기상관측병'이었다네요.
발견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1977년 1월 추운 겨울에 <그렉 보웬>이 자기 한국인 애인이랑 이곳으로 데이트를 나왔답니다.
그 애인은 당시 주한미군 전속 가수였던 <이상미>라고 하는 여가수였답니다.
커피를 끓여 먹기 위해 불을 피우기 위한 코펠 받침대 돌을 주워 오라고 했는데
<이상미>라는 여가수가 주워온 돌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는 "주먹도끼"였다는거 ㅎ
그런데 <그렉보웬>은 미국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 했다는군요.
"돌의 특별함"을 알아차린 <그렉 보웬>은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에게 편지를 보냈고
<프랑스 교수>의 소개를 통해 <서울대 김원룡교수>에게 유물을 보내어 조사를 요청하면서
30여년에 걸친 대규모 발굴 조사를 하면서 우리들에게 <先史時代>가 나타났답니다.
<이상미씨>는 1954년 생으로 그후 <그렉보웬>과 결혼해서 미국 애리조나에서 생활 해 왔다는데
<그렉 보웬>은 59세 좀 이른 나이로 죽었지만, 현재 <이상미씨>는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죠
1954년 생이니 이제 60대 후반쯤 되는군요.
[가운데가 '그렉 보웬'이고 우측이 '이상미씨']
참고로 웹써핑 해서 얻은 <그렉 보웬>과 <이상미씨>가 2005년 한국을 방문 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보여 드리는데, 그 이후 이 분들 <전곡선사유적 축제>가 열릴 때 마다 자주 방문 했답니다.
['전곡리 토층 전시관'] 11:42~11:45
['전곡리 토층']
이어서 "전곡리 토층 전시관"을 둘러 봅니다.
전시관 입구 위에 세워 놓은 돌이 "주먹도끼"인데 매우 크게 조형화 했군요.
이 공원 곳곳에 있는 수돗물등 시설물은 <주먹도끼 모양>으로 만들어 놨더군요.
고고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는 그저 수많은 돌 중에 하나로 보이는데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선사유적지공원']
계속해서 유적지 공원을 반바퀴 돌아 나가면
[동문] 12:05
박물관으로가는 <동문>을 만나 조금 나가고...
['전곡선사박물관' 후문] 12:08
그러면 <전곡선사박물관>의 후문을 만나 내려 가고
['전곡선사박물관']
[정문] 12:10~12:23
예전에 방문 했을 때엔 없었던 "전곡선사박물관"에 도착 했습니다.
특이한 외관에 놀라고 정문 출입구 문 찾느라 또 놀래고....ㅎㅎ
[1층 로비]
1층은 로비이고 박물관은 2층에 있답니다.
올라 가면...
[2층 박물관]
歷史 이전의 시대인 先史時代에 대한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기초 지식이 있거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先史時代를 이해하기 어렵죠.
아는게 있어야 뭔가 보이는건데 아는게 없으니......그래서 횡하니 돌아 보고...
['동굴벽화' 전시관]
세계 여러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재현 해 놓은 동굴이 있더군요.
아쉬운건 외국의 동굴벽화를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재현 해 놔서.....
아는게 없으니 볼거리도 없더군요....공부 좀 해서 다시 오려나? ㅎㅎ
['선사박물관' 앞 공원] 12:24
<선사박물관>을 수박 겉핡기로 둘러 보고 나가니 공원이 멋지게 조성되 있는데....
<그렉 보웬>은 앞에 보이는 <소요산> 뒤 <미군부대>에서 근무했으니
<한탄강>이 굽이쳐 나가는 이곳 <전곡 강변 주상절리길>로 데이트를 나왔다는게 이해됩니다.
['선사박물관' 정문] 12:29
<선사박물관> 정문을 나서서 ....
['전곡서사박물관' 앞 버스정류장] 12:30
<구 3번국도>에 있는 <선사박물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때맞추어 도착하는 <39-2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두천역>으로 가서 전철로 귀가 하였습니다.
['전곡선사유적지' 답사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약9km였으며 3시간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한번쯤은 가봐도 후회 없을 곳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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