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차탄천 주상절리 에움길』
"연천역-차탄교-차탄천-은대리성-전곡터미널"
[국토지리원 지도']
<연천역>에서 출발하여 "세계UNESCO"가 지정한 "한탄강지질공원"중에 또 다른 대표 지질공원인
"차탄천주상절리길"을 진행합니다.
<연천군>은 이 길을 "차탄천 에움길"이라고 명명했더군요.
<에움길>의 의미는 "차탄천을 둘러 싼 길"이라고 합니다.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탄천>은 <연천군>의 젖줄이라 할 정도로 <연천>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연천역 앞']
2022년 4월 15일 (금) 맑음
<동두천역>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발하는 <경원선대체버스> 완행을 타고 약40분이 걸려
<연천역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차탄천에움길>은 <차탄교>에서 출발하지만 대체버스는 이곳에만 정차하기에 기왕 왔으니
<연천>의 명소를 구경하며 진행하도록 합니다.
['얀천역']
먼저 등록문화재가 있다는 "연천역"부터 구경하고 갑니다.
<연천역> 뒤에 보이는 산은 "망곡산 望哭山"이라는 나즈막한 산인데
현재는 <연천군민>의 휴식과 건강 증진을 위한 체육공원으로 조성되 있답니다.
<망곡산>은 조선 말기에 <고종>과 <순종>이 승하했을 때에 이를 슬퍼한 <연천군민>들이 저 산에
올라가 <서울>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하여 <望哭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공원"
<연천역> 옆에는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에 사용하던 <급수탑>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 있다는데 <상자형>과 <원통형> 두개가
<6.25전쟁>의 상흔을 남기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기억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증기기관차 급수']
물을 끓여 증기의 힘으로 달리던 증기기관차 모형이 눈길을 끕니다.
조그만 공원을 휭하니 돌아 보고 나가면....
['연천역']
<경원선>의 주요 역 중에 하나였던 옛<연천역>은 이제 유물로 남고
그 옆에 새로운 멋진 驛舍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경원선>이 전철화 되고 있군요.
앞으론 곧 최신식 전철이 운행 되겠는데, 통일이라도 빨리 되면 KTX도 <원산>을 지나 시베리아로
갈텐데,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것은 뭔 이유일까~
['연천역' 앞 사거리] 10:22
<연천역>을 둘러 보고 다시 <역전사거리>로 나가면
정면에 "양금재봉 養金財峰, 310m"이 보입니다.
金이 많이 매장 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연천>에선 대표적 건강산행코스라 합니다.
[''연천 중앙로']
<연천역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연천중앙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이 길이 오리지날 <3번국도>입니다만,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외곽 우회로 <신3번국도>를 개설해서
이젠 <연천중심가>가 오히려 썰렁해 졌군요.
['연천군청'] 10:30
<연천역>에서 8분 정도 중심가를 진행하면 "연천군청"을 만납니다.
"연천 漣川"이라는 지명이 매우 독특합니다.
왜냐고요? ㅎㅎ 제가 한자를 뜯어 보니 <연 漣>이라는 한자가 <눈물 흘릴 연漣>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명에 <눈물 흘릴 연漣>을 쓰는 예를 찾아 보기 어렵고, 거기에다 <내 천川>까지 합쳐 졌으니
사연이 깊은 고을일 것이라고 느껴져 여러 자료를 찾아 그 내력을 알아 보았습니다.
잠시후 그 내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연천 차탄리 고인돌'] 10:33
<연천군청>에서 조금 더 내려 가면
"연천 차탄리 고인돌"을 만납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여러곳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차탄4리 마을회관'] 10:34
<고인돌> 옆에는 <차탄4리 마을회관>이 있는데
이 지역이 온통 "차탄리 車灘里"였는데 지명의 유래도 잠시후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10여분 <옛3번국도>를 따라 남진하면....
['충현탑' 앞 사거리] 10:44
<충현탑 앞 사거리>를 만납니다.
버스정류장 이름은 <충현탑.펌프장>인데, 우측에 있는 탑의 이름은 실제 <현충탑>이더군요. ㅎ
우측에 있는 <연천군 현충탑>이 "차탄천 에움길"의 출발지가 되겠습니다.
저는 <경원선대체버스>를 타고 <연천역앞>에서 내려 <연천읍내>를 답사 하고 이곳으로 왔습니다만
그런데 <동두천역>에서 <39번> 또는 <39-2번>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
이곳 <충현탑.펌프장 정류장>에 바로 내릴수 있으니
<연천읍내> 구경을 생략하실 분들은 여기서 내리면 거리를 단축 할수 있겠습니다.
['차탄교'] 10:45
"차탄교 車灘橋"
새로 개통한 <3번국도>에서 <연천읍내>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다리가 없던 옛날에 <이방원>이가 이 개천을 건너다 수레가 빠졌다는데에서 유래한다는데...
['차탄천' 북쪽 조망]
<차탄교>에서 북쪽 "차탄천 車灘川"을 조망합니다
수레가 여울에 빠지기 전까지 원래 이 개천의 이름은 <장진천>이었답니다.
<고대산>과 <금학산>에서부터 발원하여 <연천군>을 관통하며 흘러
오늘 트랙킹의 종점이 될 <한탄강 합수부>까지 흐르는 '36.8km' 길이의 개천이랍니다.
"차탄천 車灘川"이라는 이름은 <수레여울>에서 유래했답니다.
<조선> 초기에 후일 <조선 태종>으로 즉위하게 되는 <이방원>이 이 <장지천>을 건너게 되었는데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고 <연천>으로 낙향한 친구 <이양소 李陽昭>를 만나기 위해 오는 도중
이 여울을 건너다가 수레가 빠졌는데, 이 일화를 계기로 '수레'가 ‘여울’에 빠졌다는 의미의
<수레여울>을 한자로 옮기면서 <수레 차車> <여울 탄灘> <내 천川>을 사용하는 <차탄천>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양금재봉> 뒤에 유명한 <동막골>이 있죠.
제 둘째 아들이 저기서 군생활을 할때 몇번 면회를 가며 <동막골>을 구경 한바 있습니다.
<연천군>의 동쪽 막다른 고을이라고 <동막골>이 되었답니다.
['차탄교' 동측 끝] 10:49
<차탄교 車灘橋>를 건너면 우측에 "차탄천 주상절리길"의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납니다.
이제 "차탄천 에움길"이라고 명명 된 <차탄천 주상절리길>이 시작됩니다.
[뒤돌아 본 '차탄교'] 10:53
<차탄천>으로 내려가 뒤돌아 보면 <경원선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다리와
<차탄교>가 나란히 보이는데, <이방원>이가 탄 수레가 이 근처에서 물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역사로 남아 있는데도 웃고픈 얘기로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천하의 살인마 <이방원>이의 수레가 물에 빠졌다니 믿기지 않지만 <청구야담>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이양소'와 '이방원' 의 '연천' 이야기]
['이양소'가 은거 하던곳]
<연천군>이 설치한 안내판을 참고로 보면서 내용을 요약 해 보겠습니다.
<조선의 왕>들 중에 과거를 보고 합격해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왕이 된 왕족이 아닌
일반인이 있다는거 아시나요? 바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입니다.
이 왕들은 호칭 할때 이름이 묘호에 함께 붙어 다니는 특별한 왕들이죠.
이들은 고려 말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관직생활을 하다가 왕이 된 특별한 풍운아라는거 아시나요.
이 내용을 알아야 그가 이곳 <연천 차탄천>까지 오게 된 사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양소 李陽昭"
그는 조선을 개국한 <이방원>의 동갑내기 친구였답니다.
두 사람은 1382년(우왕 3년) 나란히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시쳇말로 '불알친구'였는데
과거를 준비 할때 '황해도 곡산'에 있는 <청룡사>에서 함께 공부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군요.
그러나 조선개국으로 두 사람은 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친 <이양소>는
<조선>이 건국되자 그 길로 <연천 도당곡(陶唐谷)>에 들어가 은거했다고 합니다.
그가 은거하다가 죽어 뭍힌 무덤이 현존하고 있는데 '연천군 중면 적거리 도당골(청화동)'이랍니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청구야담>에 나오는 얘기를 요약하면...
조선을 쿠데타로 개국한 <이방원>이는 많은 인재가 필요해 절친 <이양소>를 자기 곁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이곳을 다섯번이나 찾아 등용을 요청했으나 번번히 거절 당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답니다.
이 지역 이름이 "연천 漣川"이라는 <눈물 흘릴 연漣>을 사용케 된 사연이라는군요.
<태종 이방원>이는 그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옛 친구를 등용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수포로
돌아 가서 <태종 이방원>이는 <이양소>가 살던 곳을 으리으리하게 꾸며 <이화정李華亭>이라는
현판까지 내렸지만, 뜰에는 살구나무를 심고 거문고를 타면서 독서로 남은 생을 보냈다고 하는군요.
<이양소>가 죽자 <태종 이방원>이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살아서 그 마음을 굽히지 않았고, 죽어서는 그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
"此人生不可屈其心 死不可汚其身也"라고 하며, 벗에게 <청화공>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무학대사>를 보내 벗의 유택을 점지 하도록 했답니다.
['차탄천 수변길' 입구] 11:04
<차탄천 수변길>로 들어 가는 입구에 "차탄천 에움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 안내도를 확대해 보여 드리면...
['차탄천 안내도'] ★ 클릭하면 확대 됨 ★
"차탄천 에움길 안내도"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확대 됩니다.
이 안내도를 숙지하고 가야 명소들을 볼수 있으니 참고 해야 하고...
['차탄천 수변길']
"차탄천 에움길"은 이렇게 <차탄천 수변길>을 따라 가는 길이었습니다.
도시 주변 강변길처럼 산뜻하게 완성된 길은 아직 아니지만 그런대로 걷기코스를 다듬어 놓았더군요.
['왕림리 가마소'] 11:15
<차탄교>에서 20여분 수변길을 진행하면
"왕림리 가마소"를 만나는데 안내판도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겠더군요.
개천 건너편은 <차탄리>에서 <왕림리>로 들어 간다는 것을 알수 있겠습니다.
[수변길]
['크리스찬하우스'] 11:25
<왕림리 가마소>에서 10여분 더 진행하면 <크리스찬 하우스>라는 청소년수련원이 건너편에 보입니다.
<태종 이방원>이 <이양소>를 찾아 왔다가 수레가 빠졌던 하천이 <차탄천車灘川>이 되었으며,
낚시하던 <이양소>를 기다리던 곳이 정자터이며, 그가 마시던 우물이 어수정이고,
그가 친히 왕림했다 하여 "왕림리 王臨里 (지금은 旺林里로 표기)"가 돠었다고 합니다.
[수변길]
['주상절리']
"不事二君"을 외치며 죽마고우 <이방원>이의 등용 요청을 끝까지 거절하고 심심산골에서 은둔하며
생을 마친 "이양소 李陽昭" 선생을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천하의 <공자>도 “사람이란 인간사회를 피해 짐승들과 무리할 수 없다”면서 맹목적인 은거를
꼬집었는데, 선생의 절개는 너무 융통성 없는 행동이라 폄훼될 수 있지는 않을까...
"대쪽같은 절개를 지키는 삶"이라기 보다 "굴러 들어온 부와 권력을 차버린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비하 하진 않을까....
그런데 요즘 대선 과정에서 유력 대선 후보에게 아첨하며 달려들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며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똥파리 같은 인간들을 보면 <이양소> 선생 같은 사람이 그리워 지기도 합니다.
그런 똥파리들의 감언이설을 듣고 오만해 져 치정에 흔들리는 정치 지도자들은 없길 기원합니다.
[징검다리] 11:34
<차탄천 에움길>에는 이런 징검다리가 무려 열개가 넘는듯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차탄천>을 열번이나 왔다리 갔다리 건넌다는 의미도 됩니다.
['판상절리']
밀가루 반죽이 응고된 듯한 용암들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쉼터] 11:44
<왕림리 가마소>에서 30여분 진행하면
<용소> 앞에 쉼터가 하나 있습니다.
<차탄천 에움길>에 있는 유일한 쉼터였으며 화장실도 있더군요.
['용소'] 11:45
쉼터 건너편에는 "용소 龍沼"가 있는데
<차탄천>이 여울쳐 흐르다 화산암을 침식해 만들어진 동굴과 '沼'가 있는데 ...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고
[징검다리] 11:49
<용소> 아래에 설치된 징검다리는 비가 조금이라도 더 내리면 건너기 어렵겠더군요.
['해동양수장'] 11:59
이어서 "해동 양수장"을 만납니다.
<차탄천>도 깊은 협곡이어서 물을 퍼 올려야 농사를 지을수 있어 만들어진 양수장이더군요.
[보와 징검다리]
[뒤돌아 본 '해동양수장']
<해동양수장>을 지나 뒤돌아 본 <해동양수장> '보'와 징검다리입니다.
['수평절리']
절리에는 <주상절리> 만 있는게 아니죠.
물고기가 떼를 지어 유영하고 있는 듯한 <수평절리>도 간간이 관찰되고
[징검다리]
[주상절리]
어쩌면 단조롭게 느껴 질수도 있는 협곡이 계속 이어 집니다.
[징검다리]
[폭포] 12:24
천연폭포인지 인공폭포인지 모를 폭포수도 두군데에 있었고...
[징검다리] 12:46
<차탄천> 징검다리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거닐면
['은대리 주상절리'] 12:49
<차탄천>의 동쪽은 "은대리 隱垈里"라고 하는 마을이고,
서쪽은 "왕림리 王臨里 (지금은 旺林里로 표기)"인데
주상절리가 수십만명이 먹어도 남을 만한 시루떡 같은 화산암 덩어리가 장관을 이루는 곳에 도착합니다.
"왕림리 王臨里 (지금은 旺林里로 표기)"는 <이방원>이가 <이양소>를 찾아 가다 머문 곳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앞에서도 언급했는데....
"은대리 隱垈里"는 글자 그대로 <숨어 지내는 마을>이라는 뜻이겠습니다.
이 지명은 앞에서 언급한 <이양소>와 함께 같은 행동을 보인 "김양남 金楊南"과 깊은 관계가 있답니다.
<김양남>도 <이양소 李陽昭>와 함께 동문수학하던 <이방원>이와 함께 과거에 급제했으며
서로 친분이 두터웠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조선>을 실제 만든 <이방원>은 자기를 도와줄 여러 사람이 필요했으나
대부분의 인재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답니다.
<김양남>도 <이양소>와 같이 <고려>가 멸망하자 신하의 절개를 지키려고
<전곡읍 은대리隱垈里>에 은거했다는데 <은대隱垈>라는 지명은 <김양남>이 숨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김양남>은 "강릉 김씨의 중시조"랍니다.
그의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고, 묘는 '연천군 전곡읍 고릉리 능골'에 있답니다.
[펜션]
경치가 조금이라도 좋은 곳엔 펜션들이 자리 잡고
['왕림교'] 12:51
이어서 "왕림교" 밑을 통과 합니다.
<전곡읍내>와 <왕림리>를 연결하는 다리더군요.
['용바위토종닭집'] 12:54
<왕림교>를 지나면 바로 징검다리를 건너며 <용바위토종닭집>을 만나며
['용바위교'] 12:59
계속해서 "용바위교"를 만납니다.
분명 이 근청 "용바위"가 있을 텐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용바위교' 밑]
['한탄강 협곡' 형성 과정]
<용바위교> 밑에는 <한탄강 협곡 형성 과정>을 알려 주는 안내판이 있어 공부 좀 하고
['4억년 전 바위]
<차탄천 에움길>에서 만나는 <은대리 판상절리>와 <습곡구조>는
조금은 차별화된 지질 형태로 <차탄천 에움길>에서 만나는 최고의 볼거리랍니다.
<화산암> 주변의 암석들은 약 <4억년 전> 얕은 바다에서 만들어진 <퇴적암>들이
<2억 5천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강한 힘을 받아 지표면으로 솟아 오르고 풍화와 침식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탄천>에는 여러 종류의 암석들이 지구 역사를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연육교]
이어서 이번엔 징검다리 가 아닌 연육교를 건너 건너편 수변을 이용 했습니다
['선바위'와 '선비위펜션'] 1:23
<연육교> 부터는 조성된 수변길이 없더군요. 아마 제방 위에 길이 있는듯 한데
길은 없지만 그냥 수변길을 걸었습니다.
<용바위>인지 <선바위>인지 모를 바위가 있는 곳 뒤에 <선바위 펜션>이 있는 걸로 봐서
이 바위는 "선바위"로 보이는군요. 한자로 쓰면 <立石>이 되겠군요.
[보] 1:43
보를 하나 더 지나면
['장진교'와 '장진교 주상절리'] 1:47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게 되고
"장진교"와 "장진교 주상절리"를 만납니다.
<차탄천>의 원래 이름이 <장진천>이었다고 앞에서 언급 한바 있습니다.
['장진교 주상절리']
<장진교 주상절리>를 감상하고 조금 내려 가면...
['향남로 연육교'] 1:55
다시 연육교를 만나는데 <향남로 연육교>였습니다.
<차탄천>이 <한탄강>에 합수하는 곳에 있는 "은대리성 전망대"가 조망됩니다.
연육교에서 좌측 제방길로 올라 갑니다.
['제방길'] 1:59
연육교에서 제방길로 올라서 바라보는 <향남로 연육교>와 <은대리성 전망대>이고...
['전곡' 조망]
제방에 올라 서니 동쪽으로 <전곡읍내>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은대리성' 오름길]
제방엔 <전망대>가 있는데 <삼형제바위>를 조망하는 곳이더군요.
<은대리성>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좌측에 보입니다.
['삼형제 바위']
"삼형제 바위"
<차탄천>이 <한탄강>에 합수 하는 지점에 있는 바위입니다.
구전되는 이야기는 안내문을 참고 하고
['은대리성 전망대'] 2:11
"은대리성 전망대"로 올라 가서 주변을 조망합니다.
['차탄천' 조망]
먼저 지나온 북쪽을 바라봅니다.
<차탄천>이 <장진교>를 지나 왔다는 것을 알수 있고
['차탄천-한탄강' 합수부]
전망대 바로 아래엔 <삼형제바위>가 있는데 나무들로 잘 보이지 않는군요.
진달래 등 봄꽃들이 서울보다 북쪽 지방이라고 이제서야 만개하고 있습니다.
['한탄강' 조망]
<차탄천>이 <한탄강>에 합수하여 <임진강>을 향해 흘러 가는 모습이 그림 같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한탄강>이 <임진강>에 합수 하는 <도감포>가 있습니다.
<은대리성>에서 <임진강 합수부>까지가 "연천 한탄강 주상절리길 1코스"이더군요.
조만간 답사 할 예정입니다.
['은대리성']
['소요산' 조망]
['연천의료원'
전망대에서 나가면 "은대리성 隱垈里城"이 펼쳐지는데 삼국시대 城이라고 합니다.
<연천의료원>이 <은대리성>과 붙어 있었습니다.
[뒤돌아 본 '은대리성']
['은대리성' 조감도]
[안내문]
<은대리성> 입구로 나가며 "은대리성 隱垈里城" 안내판을 참고 하고
['연천의료원'] 2:30
<연천의료원>을 통과 하는데, 요즘 코로나사태로 무척 힘든 곳이겠습니다.
['은대체육공원길']
<연천의료원>에서 <전곡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이 <은대체육공원>과 나란히 가는 길이었는데
서울에는 이미 폈다 진 벚꽃이 이곳엔 만발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보다 일주일은 늦게 피는듯.....
['전곡시내'] 2:50
<전곡터미널>로 나가 <39-2번 버스>를 타고 <동두천역>에 내려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차탄천 에움길>의 공식 거리는 9.9km라고 합니다만
오늘 걸은 거리는 <연천역 급수탑>에서 부터 <차탄교>까지와 <은대리성>에서 <전곡버스터미널>까지
접속거리를 합쳐 약13km였으며 4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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